건강

우리 안의 우주: 장내 미생물 생태계 탐험 - 미생물총부터 건강한 장까지

몸튼튼기록러 2025. 4. 27. 07:37

I. 서론: 장내 미생물 - 우리 안의 필수 생태계

A. 장내 미생물총(Microbiota)과 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 정의 (용어 명확화)

인간의 장에는 숙주와 공생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방대한 미생물 군집이 존재한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미생물총(microbiota)'과 '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이라는 두 용어의 정확한 구분이 필요하다. 장내 미생물총(Gut microbiota)은 인간의 장, 특히 대장에 서식하는 박테리아, 고세균, 진균, 바이러스 등 모든 미생물 자체의 집합체를 의미한다. 이 미생물 군집은 약 10조에서 100조 개의 세포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는 인간 세포 수보다 약 10배 많은 수치이다. 역사적으로는 '장내 세균총(gut flora)'이라는 용어도 사용되었으나 , 현재는 미생물총이라는 용어가 더 포괄적으로 사용된다.  

반면, 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은 특정 환경(이 경우 인간의 장)에 존재하는 미생물 군집(미생물총)과 그들의 유전체(collective genomes) 전체를 아우르는 개념이다. 즉, 마이크로바이옴은 미생물 자체뿐만 아니라 이들이 가진 유전자 정보 전체를 포함한다. 장내 마이크로바이옴은 인간 유전체보다 약 100배에서 150배 더 많은 유전자를 보유하고 있어 , 인간이 자체적으로 수행할 수 없는 방대한 대사 능력을 제공한다. 문헌에서는 종종 이 두 용어가 혼용되기도 하지만 , 정확하게는 미생물총은 생물 군집 자체를, 마이크로바이옴은 군집과 그 유전 정보 전체를 지칭한다.  

 

최근 연구들은 장내 마이크로바이옴을 숙주 생리, 대사, 면역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필수적인 "장기(organ)" 또는 "초유기체(superorganism)"로 인식하고 있다. 이는 장내 미생물 군집이 단순한 공생체를 넘어, 식단과 같은 환경적 요인과 숙주 생리 사이의 역동적인 상호작용 매개체임을 시사한다.  

 

B. 주요 미생물 구성원: 우점 문(Phyla)

장내 미생물총은 매우 다양한 종 (>1000종)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 분류학적으로는 소수의 세균 문(phylum)이 전체 군집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 후벽균문 (Firmicutes, 그람 양성균): 박테로이데테스문과 함께 장내 미생물총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두 우점 문 중 하나이다. 혐기성 포자 형성균인 클로스트리듐 강(Clostridia)과 호기성 또는 통성 혐기성균인 바실러스 강(Bacilli) 등 다양한 그룹을 포함한다. 주요 속(genus)으로는 Lactobacillus, Clostridium, Eubacterium, Ruminococcus, Faecalibacterium 등이 있다. 이들은 식이섬유나 저항성 전분과 같은 탄수화물을 분해하고 단쇄지방산(SCFA), 특히 부티르산(butyrate) 생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일부 황산염 환원 세균(SRB)도 이 문에 속한다.  
     
  • 박테로이데테스문 (Bacteroidetes, 그람 음성균): 또 다른 우점 문으로 , 주로 혐기성이며 포자를 형성하지 않는 막대 모양 세균이다. 주요 속으로는 Bacteroides와 Prevotella가 있다. 복합 다당류(식이섬유, 뮤신 등) 분해와 SCFA(아세트산, 프로피온산) 생성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유익한 공생균뿐만 아니라 Bacteroides fragilis와 같은 기회 감염균도 포함한다.  
     

이 외에도 액티노박테리아문 (Actinobacteria) (예: Bifidobacterium), 프로테오박테리아문 (Proteobacteria) (예: Escherichia, Helicobacter), 베루코마이크로비아문 (Verrucomicrobia) (예: Akkermansia), 푸소박테리아문 (Fusobacteria) 등이 상대적으로 적은 비율로 존재한다. 일부 프로테오박테리아는 염증 유발 가능성이 있으며 , Akkermansia muciniphila는 점액 분해 능력을 통해 장 건강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Bifidobacterium은 특히 영유아의 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역사적으로 후벽균문/박테로이데테스문 비율 (F/B ratio)은 비만과 같은 대사 질환의 지표로 제안되었다. 초기 연구에서는 비만인 사람이나 동물에서 F/B 비율이 높게 나타나는 경향이 관찰되었는데 , 이는 후벽균문의 에너지 수확 효율이 더 높기 때문일 수 있다는 가설로 이어졌다. 그러나 후속 연구들에서 상반된 결과들이 보고되면서 , F/B 비율 자체의 보편적인 생체 지표로서의 타당성에 대한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식단(고지방식 vs. 고섬유식), 유전, 생활 습관, 분석 방법의 차이 등 다양한 요인이 이 비율에 영향을 미치며 , 건강한 사람 사이에서도 개인 간 변동성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F/B 비율 하나만으로 비만이나 장 건강 상태를 판단하기는 어렵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으며, 단순한 문(phylum) 수준의 비율보다는 특정 속이나 종의 존재 유무, 또는 SCFA 생산 능력과 같은 기능적 잠재력에 더 주목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C. "건강한" 장내 미생물총의 개념: 다양성, 항상성, 그리고 불균형(Dysbiosis)

건강한 장내 미생물총을 명확하게 정의하는 것은 복잡하지만, 일반적으로 다양성(diversity), 항상성(homeostasis), 그리고 이와 반대되는 불균형(dysbiosis) 개념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

  • 다양성 (알파 다양성, Alpha Diversity): 일반적으로 높은 세균 다양성, 즉 많은 종류의 미생물이 풍부하고 고르게 분포하는 상태는 건강한 장의 지표로 간주된다. 높은 다양성은 기능적 중복성(functional redundancy)을 높여 외부 교란(항생제 사용, 감염 등)에 대한 회복탄력성(resilience)을 향상시키고, 소화 및 영양소 흡수, 다양한 대사산물(예: SCFA) 생산, 면역계 조절 능력을 강화하는 데 기여한다. 다양성은 종 풍부도(richness, 존재하는 종의 수)와 균등도(evenness, 각 종의 상대적 비율)를 포함하는 지표로, 섀넌 지수(Shannon index), 카오1 지수(Chao1 index) 등으로 측정될 수 있다.  
     
  • 다양성의 한계: 낮은 다양성은 염증성 장질환(IBD), 비만, 제2형 당뇨병(T2D), 심혈관 질환(CVD), 특정 암 등 다양한 질병과 연관되어 있다. 그러나 높은 다양성이 반드시 더 나은 건강 상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높은 다양성이 장 통과 시간 지연이나 유해 단백질 분해 산물 순환과 연관된 경우도 보고되었다. 또한, 건강한 사람 간에도 유전, 환경, 생활 습관 차이로 인해 미생물 구성의 변동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 단순히 다양성 지표만으로 건강 상태를 규정하기는 어렵다. 높은 다양성은 건강한 미생물총의 중요한 기반이지만, 군집을 구성하는 미생물의 종류와 그들의 기능(예: 유익한 SCFA 생산 vs. 유해한 황화수소나 TMAO 생산)이 건강에 더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건강 평가에는 다양성 지표를 넘어 기능 유전체학(functional metagenomics) 및 대사체학(metabolomics)적 접근이 필수적이다.  
     
  • 항상성 (항상성 유지 상태, Eubiosis): 장내 미생물 군집과 숙주 사이의 상호작용이 균형을 이루고 안정된 상태를 의미한다. 높은 다양성, 안정성, 회복탄력성, 그리고 숙주에게 유익한 기능(영양소 대사, 병원균 방어, 면역 관용 등) 수행이 특징이다. 이러한 항상성은 숙주가 미생물이 이용할 수 있는 자원의 가용성을 조절하는 기능에 의해 유지된다.  
     
  • 불균형 (Dysbiosis): 항상성이 깨진 상태, 즉 장내 미생물 군집의 구성, 기능, 또는 국소적 분포에 불균형이나 교란이 발생한 상태를 의미한다. 이는 종종 다음과 같은 특징을 동반한다:
    • 미생물 다양성 및 풍부도 감소  
       
    • 유익균(예: SCFA 생산균 Faecalibacterium) 감소  
       
    • 잠재적 유해균(병원성 공생균, pathobionts)의 과증식  
       
    • 대사 활동의 변화   
     
  • 질병의 동인으로서의 디스바이오시스: 장내 미생물 불균형은 만성 염증성 질환, 대사 질환, 자가면역 질환, 신경계 질환, 암 등 수많은 만성 질환의 발병 및 진행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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