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는 계절, 유독 생각나는 맛이 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비릿한 첫인상으로 기억될지 모르지만, 한번 그 맛에 빠지면 헤어나올 수 없다는 마성의 음식. 바로 겨울 바다의 진미, 과메기입니다. 그리고 그 과메기의 본고장이라 불리는 포항 구룡포에는 과메기만큼이나 깊은 이야기를 품은 또 다른 명물이 있습니다. 오늘은 한국기행 영상을 통해 구룡포의 겨울 향기와 사람 사는 이야기가 담긴 특별한 국수를 만나봅니다. 과연 어떤 매력이 전국 미식가들의 발길을 이곳으로 이끄는 걸까요?
해파랑길의 종착지를 향해 걷는 이들의 얼굴에는 설렘과 함께 탁 트인 동해 바다를 마주한 감탄이 어려 있습니다. 특히 바닷가에서 태어난 이에게 구룡포의 바닷바람은 고향의 향수처럼 반갑기만 합니다. 새벽 4시 차를 타고 멀리서 찾아올 만큼, 구룡포가 품은 매력은 단순한 풍경 그 이상입니다. 같은 길을 걷고, 같은 바다를 보며 느끼는 동질감은 낯선 이들마저 하나로 묶어주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합니다. 겨울 바다가 주는 선물 같은 풍경 속으로 함께 걸어가 볼까요?
구룡포의 겨울을 상징하는 풍경 중 하나는 바로 덕장 가득 걸린 과메기 행렬입니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과메기는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돌죠. 원래 청어로 만들었다는 과메기는 어부가 우연히 배 지붕에 던져놓은 것이 얼었다 녹기를 반복하며 기막힌 맛을 냈다는 탄생 설화를 품고 있습니다. 하지만 청어 어획량이 줄면서 이제는 꽁치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습니다.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과메기 덕장은 구룡포의 겨울을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진풍경입니다.
전국 과메기 생산량의 90%를 차지하는 포항, 그중에서도 80%가 바로 이곳 구룡포에서 만들어진다고 하니, 과메기의 수도라 불릴 만합니다. 이렇게 과메기가 유명해진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 산에서 부는 바람과 바다에서 부는 바람이 정확히 교차하는 천혜의 자연조건 덕분입니다. 낮은 산 능선 덕에 막힘없이 불어오는 산바람과 시원한 바닷바람이 만나 과메기를 꾸덕꾸덕 맛있게 말려줍니다. 여기에 따사로운 햇볕까지 더해져야 살점에 골이 깊게 파여 쫄깃한 식감의 최상품 과메기가 탄생합니다. 해를 따라 덕장을 옮기는 정성스러운 손길이 더해져야 비로소 최고의 맛을 낼 수 있는 것이죠.
잘 마른 과메기는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데요. 김과 다시마에 싸서 마늘, 고추와 함께 먹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구룡포 사람들은 그저 초장 하나만 찍어 먹어도 그 맛을 제대로 즐긴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비릿함 때문에 먹기 어려웠다는 사람도 이곳에서 일하며 어머님들이 드시는 모습을 보고 자연스럽게 과메기 맛에 빠져들었다고 하네요. 어떤 푸짐한 상차림 부럽지 않은 맛, 힘든 어부들의 고단함도 잊게 만드는 마성의 매력을 지녔습니다.
구룡포는 예로부터 풍부한 수산물 덕분에 황금어장이라 불렸습니다. 전국 각지의 어부들이 몰려들었고, 포구는 밤낮없이 활기가 넘쳐 강아지도 돈을 물고 다닌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죠. 먼바다로 조업을 나가는 어부들에게 빠르고 든든하게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음식은 필수였습니다. 그래서 발달한 것이 바로 국수 문화입니다. 한때 구룡포에는 아홉 곳의 국수 공장이 성업했을 정도로 어부들의 삶과 국수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습니다.
화려했던 시절은 빛바랬지만, 구룡포에는 여전히 옛 방식 그대로 국수를 만드는 곳이 남아있습니다. 이순화 할머니는 수십 년째 밀가루와 소금물만으로 국수 반죽을 하고 있습니다. 계절과 날씨에 따라 소금물의 양을 조절하는 것이 맛의 비결. 기계로 쉽게 뽑아내는 듯 보여도, 손으로 직접 반죽의 찰기를 확인하며 오랜 경험과 감으로 최상의 면발을 만들어냅니다. 어머니의 손맛과 정성을 아들이 이어받아, 비록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구룡포 국수의 명맥을 꿋꿋하게 지켜나가고 있습니다.
구룡포 사람들이 즐겨 먹던 특별한 국수가 있습니다. 바로 '모자반 국수' 또는 '시락국수'라 불리는 음식입니다. 쌀이 귀했던 시절, 국수는 훌륭한 식사 대용이었습니다. 시락국수에는 데친 시래기와 된장, 고춧가루 양념뿐 아니라 아주 특별한 재료가 들어갑니다. 바로 어부들이 많이 잡던 꽁치를 통째로 다져 넣는 것인데요. 꽁치에서 우러나오는 깊고 구수한 맛 덕분에 별다른 육수가 필요 없습니다. 푹 끓인 시락국수 한 그릇은 고된 조업을 마친 어부들에게 최고의 보양식이자 추억의 맛입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시락국수를 함께 나눠 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는 모습에서 구룡포 사람들의 따뜻한 정과 세월의 향기가 느껴집니다.
영상주소 : youtube.com/watch?v=wwKo39xjtHo
사진출처 : 유튜브 EBSDocumentary 캡처
사진의 모든 권리는 유튜브 EBSDocumentary 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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